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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용병술, 체이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조직관리 경험이 일천했다. 전임 대통령들이 장군이나 주지사, 하다못해 대농장주로 많은 인력을 통솔해 본 경력이 있었으나 그는 주의회 의원 출신으로 연방 하원의원 한 번 그리고 직원 두 명인 로펌의 파트너 이력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이 된 데는 그의 독특한 용병술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는 노예해방과 같은 노선에 동조한다면 정치적 라이벌이라도 과감히 중용해 그 능력을 적극 활용했다.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임명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체이스는 끊임없는 대권 도전으로 링컨을 괴롭혔지만 업무 면에서는 성공적인 전비 조달, 달러 화폐의 통일 등 큰일을 해냈다.

전쟁에는 군사전술뿐 아니라 자금조달이 중요하다. 남북전쟁 발발 초기, 자금 면에서 부자들이 많은 남부가 유리해 보인 반면 북부는 재정적자로 거의 파산상태였다. 전시에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첫째 세금을 올리고, 둘째 화폐를 찍고, 셋째 돈을 빌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세금을 올리는 방법은 심한 조세저항에 부딪히고 돈을 찍어내는 방법은 악성 인플레에 시달리기 때문에 모두 한계가 있다. 결국 은행에서 돈을 꾸어오거나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방안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체이스 재무장관은 은행가인 제이 쿡의 힘을 빌려 전비의 70%를 채권발행으로 조달했다. 쿡은 분할과 일반 공모라는 방법으로 발행한 채권을 애국심에 호소해 5억달러의 국채를 거뜬히 팔았다. 우선 액면 1000달러짜리 국채를 50달러 단위로 쪼갠 다음, '국채 매입은 애국이자 횡재하는 지름길'이라는 신문광고를 내는 한편 2500명의 판매원을 고용해 전국을 누비며 팔았다. 아울러 체이스는 미국 최초로 소득세를 도입하고 현 달러화의 원형이 된 연방은행권도 발행했다. 난국 타개의 명분으로 의회를 설득해 금을 비축하지 않고도 연방 중앙은행이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낸 것이다. 이때 발행한 지폐의 뒷면이 녹색이었기 때문에 '그린백'으로 불렸다. 이제까지 미국은 은행마다 은행권을 발행했는데 그린백이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화폐의 통일을 가져왔다. 현재까지 미 달러화의 별칭이 '그린백'이라고 불리게 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체이스는 대통령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1864년 대선이 다가오자 체이스 장관은 링컨 대통령을 비난하는 팸플릿을 만들어 돌리고 가장 많이 쓰이는 1달러 지폐의 도안에 자신의 얼굴을 넣는 등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런데도 링컨은 이를 눈감아 주며 믿고 일을 맡겼다. 체이스의 행동을 못마땅해 하는 참모들에게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말에 쟁기를 씌워 밭을 가는데 유난히 게으름 피우던 말이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이 느닷없이 쟁기를 끌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밭을 다 갈고 말을 들여다보니 말에 파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파리들 때문에 말이 미친 듯이 달린 것이다. 체이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파리가 달라붙어 있는 한 그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결국 링컨의 신뢰가 성공적인 전비조달로 남북전쟁의 승리와 미국 화폐의 통일의 업적을 가져온 것이다. 체이스는 대통령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한 덕분에 성공한 재무장관으로 오늘날까지 미국의 최대 은행인 'JP모간 체이스'에 그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ㅡ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 경영지원본부장